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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잃은 음악 - 베토벤과 바버라 이야기

마티

로빈 월리스 (지은이), 홍한결 (옮긴이)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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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운명, 장엄 미사, 합창, 대푸가 …
베토벤이 불협과 혼돈의 한복판에서 지켜낸 삶!

베토벤 탄생 250주년
청력 잃은 음악가 베토벤에 관한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이야기”

2020년 전 세계 음악계의 최대 이슈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악성(樂聖)은 베토벤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됐고, 그의 극적인 일화는 한두 개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수많은 책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다뤄졌다. 베토벤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악상을 그저 받아 적어 음악을 완성’했다는, 낭만주의적 천재 예술가상엔 들어맞으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가 그 일례다. 『소리 잃은 음악』은 청력 잃은 음악가 베토벤에 관해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악성, 반신반인, 괴팍한 천재와 같은 박제된 이미지나 영웅 신화를 탈피해, 귀먹은 베토벤의 창작 행위와 행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고 베토벤 음악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밝혀낸다.

청력 잃은 아내를 통해 말년의 베토벤을 추적한 한 음악학자의 기록
음악 연구와 뇌과학, 그리고 체험을 한데 엮다

베토벤의 음악을 평생 연구해온 음악학자인 로빈 월리스는 아내 바버라에게 닥친 청력 상실을 10여 년간 곁에서 지켜보면서, 비슷한 청력 문제를 겪었던 베토벤의 말년을 탐구해나갈 통찰과 동기를 얻는다. 겨우 20대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던 바버라는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44살에 돌연 청력을 잃었다. 저자는 이후 그녀가 청력 보조기기인 포켓토커를 쓰는 청력 훈련 과정, 인공와우 이식 수술 후의 청각 학습 과정을 지켜보며 뇌의 소리 인식 메커니즘, 음악의 시각적·물리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알아간다. 또 잘 듣지 못해도 연주를 눈으로 보면 악기 소리를 분별하는 바버라의 경험에서는 희미한 청각, 촉각 기억, 시각을 모두 동원하는 음악 지각 능력에 감탄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청력 상실 후 베토벤의 작곡 활동을 낭만화하거나 신화화해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게 베토벤이 장애를 정녕 ‘극복’한 것인지, 그가 써낸 음악이 과연 극복의 산물인지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아간다.

귀먹은 베토벤은 도대체 어떻게 작곡했을까?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을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또 다른 접근법은 베토벤이 남긴 방대한 스케치와 자필 악보, 서간, 필담 노트 등의 다양한 기록을 살피는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이 썼던 여러 종류의 피아노와 ‘청취 기계’, 작곡 도구를 연구하고 직접 체험해본다. 바버라를 비롯해 난청을 겪는 연주자, 지휘자의 사례도 참조한다. 이로써 저자는 귀먹은 베토벤이 어떻게 소리를 듣고 작곡을 할 수 있었는가, 소리를 잃고도 뛰어난 음악을 창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그려 보인다. 그 실마리를 얻으려면, 베토벤의 작곡 도구와 방식, 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음악은 몸에서 비롯되고, 움직이고 떨리는 악기로 만들어진다”
피아노 건반의 촉감, 해머의 오르내림, 몸체의 진동

베토벤은 그라프 피아노, 브로드우드 피아노, 에라르 피아노 등 여러 대를 쓰며 한창 진화 중이던 피아노를 적극 실험했다. 저자는 이들 피아노 각각의 건반눌림(key-dip), 액션, 페달처럼 촉각적·물리적 특징에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베토벤이 19세기 초에 쓴 피아노와 공명기의 복원을 추진한 연주자·제작자와 교류하고 복원 결과물을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베토벤이 경험했던 소리와 진동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실제로 베토벤은 평생 피아노를 만지고, 펜과 연필로 종이에 음표를 그려가면서 음악을 매만졌던 작곡가다. 그는 귀가 나빠질수록 점점 더 ‘몸’에 의지해 피아노라는 악기와 소통했다. 악기와의 접촉을 통해 “소리를 촉각적으로 경험”(177쪽)했고, 진동이 더 잘 전달되는 악기를 찾았다.

종이 위의 즉흥연주
펜과 종이 역시 필수적인 작곡 도구였다. 늘 종이를 휴대할 정도로 악상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던 베토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스케치를 남겼고 청력이 나빠지기 전부터 기보를 기발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베토벤에게는 기보 작업 역시 일종의 ‘연주’였고 “음악을 소리의 세계에서 시각과 촉각의 세계로 옮겨놓는 과정”(266쪽)이었다. 작품은 반드시 종이 위에서 다듬어나가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던 것이다.

귀의 연장(延長), 청취 기계
더불어, 베토벤은 청각 보조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소리를 듣고자, 기계 발명가 멜첼이 만든 다양한 형태의 나팔형 보청기(ear trumpet)를 “청취 기계”라 부르며 사용했다. 그리고 1820년대에는 피아노 소리를 연주자에게 모아주는 장치, 즉 피아노 위에 올리는 공명기를 직접 구상해 설치함으로써 “예술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 흥미로운 창작 환경을 갖추었다”(12쪽).
귀먹은 음악가가 어떻게 작곡했는가에 대한 이 책의 답변은 명쾌하다. ‘늘 하던 방식대로’ 했다. 베토벤의 작곡 방식은 개선을 거듭했을 뿐 근본적인 변화나 단절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난청 전부터 앞서 언급된 모든 도구를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용했고, 그 활용법을 발전시킬지언정 일관되게 “자신의 몸과 각종 재료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음악을 창조”(106쪽)했다.

“더없이 현대적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현대적일 작품”
불협화음과 파격으로 가득한 베토벤 후기 음악의 불가사의에 다가가다

말년의 베토벤은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걸작들과 심오한 작품들을 써냈다. 교향곡 9번, 「장엄 미사」, 「함머클라비어」나 「대푸가」 같은 후기 피아노 소나타 및 현악 사중주, 디아벨리 변주곡 등 베토벤 후기 걸작은 대체로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쓰였다. 당대의 익숙한 도식을 벗어나 불협화음, 변칙적인 리듬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들을 두고 평가가 엇갈렸는데, 평가 내용과 상관없이 대부분 그 음악적 특성이 작곡가의 귀먹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겼다. 베토벤의 중·후기 음악을 ‘역경 속의 긍정’으로 해석하거나,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은 베토벤이 어느 곳에서도 음악을 통해 청각장애와 ‘맞선다’고 말한 적이 없음을 밝힌다. 저자는 말년의 베토벤이 리드미컬한 곡, 짧고 귀에 꽂히는 동기를 활용하는 곡을 많이 쓴 이유로, 난청인이 리듬을 가장 쉽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든다. 이는 인공와우 이식 후 가장 만족한 공연이 재즈 공연이었던 바버라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또한 짧고 특징적인 선율 조각이 청각 기억에 담기 쉽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점차 피아노와 맺은 관계의 진화가 미친 영향도 느낄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대푸가」를 “더없이 현대적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현대적일 작품”(275쪽)이라고 일컬었다. 200년 넘게 베토벤에게 위대한 음악가의 위상을 유지해준 이 현대성은 청각장애를 극복한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귀가 멀면서 기존의 방법들을 조금씩 개선해간 덕분에 선취될 수 있었다.

“그는 청각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다”
한계를 껴안은 베토벤과 바버라, 두 사람의 공명

『소리 잃은 음악』에서 저자는 아내 바버라의 삶을 통해 베토벤을 더 분명히 알게 되고, 베토벤의 음악과 삶을 통해 바버라의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 작업은 바버라를 무리하게 격상하려거나, 비범한 베토벤을 부당하게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아니다. 두 사람은 후천적인 청각장애를 얻었고, 둘 다 조금의 소리라도 듣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장애를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 채 그 경계를 넓혀가려는 시도였다.
두 사람의 자취가 교차하고 호응하면서 종종 온전히 읽히지 못하는 베토벤 음악에 담긴 서정성, 유약함과 연약함이 더 섬세하게 드러나고, 베토벤이 겪었을 사회적 고립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종이 위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자신에게 소리를 들려줄 장치를 고안하고, 피아노와 세심하게 접촉하는 비범한 작곡가의 삶. 그리고 들을 수 없어도 아이들의 매 공연에 참석하고, 지역사회 모임에 나가고, 단 하루를 즐거운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평범한 여성, 엄마, 아내, 이웃의 삶. 이 둘의 성취와 온전한 삶을 향한 의지가 다르지 않음을 이 책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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